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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동 석촌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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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1911년 일제에 의해 처음 유적 현황 조사가 이루어졌고 한성백제의 무덤으로 인식되었다. 1912년에는 간단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당시 제작된 분포도에 따르면 무덤을 크게 갑총(甲塚)과 을총(乙塚)으로 나누어 표시해 놓았으며 갑총이 23기, 을총이 66기로 나타나고 있다. 분포도와 함께 기록된 내용을 종합했을 때 갑총은 봉토분, 을총은 적석총으로 추정된다.
1916~1917년 정밀 조사가 실시되었으며 무덤에 대한 내부조사와 실측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1917년 작성된 도면은 무덤의 위치와 대략적인 규모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제작되었는데, 자그마치 290여 기 이상의 무덤이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석촌동 무덤들은 백제 초기에 만들어진 무덤으로서 일제 때 처음 조사되었다. 1호, 2호 무덤은 주민들이 농사 짓는 땅으로 이용해서 내부구조와 유물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며, 3호 무덤은 기원전·후부터 나타나는 고구려 무덤 형식인 기단식돌무지무덤(기단식적석총)이다.
무덤은 높은 지형을 평평하게 하고 밑 테두리에는 매우 크고 긴 돌을 두르고 자연석으로 층단을 이루면서 쌓아올려 3단으로 되었는데, 옛 고구려 지역인 만주 통구에 있는 장군총보다 큰 것임이 밝혀졌다. 5호 무덤은 조사가 완전하게 되지 않아 구조와 유물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며, 무덤 주변에는 무덤을 두르고 있는 돌을 2단으로 쌓았다.
내부구조에 대해서 확실히 알 수는 없고, 이 지역 지배계층의 무덤으로서 주변에 만들어진 무덤의 주인보다는 낮은 계층의 사람들 같고, 독무덤(옹관묘)이나 작은 돌방무덤(석실묘)에 묻힌 사람들 보다는 조금 높은 신분계층의 사람들의 무덤으로 볼 수 있다.
이 무덤들은 가락동·방이동 무덤과 함께 초기 백제의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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